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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조선 2015.05 Women Chosun

3,112 2015.06.12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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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jor monthly magazine in Korea.

 

 

별 감흥이 없어진 지 오래다. 힐링이니, 치유니 하는 표현들.
너무 자주 들려와서다. ‘음악에 위로받다’는 말에 큰 공감을 못 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박지혜를 만나고 생각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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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처음 본 건 세계적인 강연회인 테드(TED; Technology· Entertainment·Design)를 통해서다. 지난 2013년 한국 대표로 강연회에 참가한 박지혜는 ‘세계적인 바이올린 신동’, 딱 그 이미지였다. 멘트가 끝날 때마다 바이올린 선율이 이어지는 방식이었는데, 말을 할 때는 당돌했고 바이올린을 켤 때는 당당했다. 예쁘장한 외모에 실력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일견 부족함 없어 보이는 그의 강연 주제는 뜻밖에도 ‘우울증’이었다. 12분이라는 짧은 시간. 진심 어린 눈빛과 선율 때문이었을까. 강연 이후 청중은 일제히 일어나 손뼉을 쳤다. 테드 큐레이터인 크리스 앤더슨은 “그해 가장 기억에 남는 강연 중 하나”라고 했다.


바이올리니스트 모녀

실제로 만난 박지혜는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어딘가 예민할 거라는, 혹은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을 거라는 생각, 잠깐은 했었다. 그런데 오산이었다.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무게감이나 벽이 전혀 없었다. 그보단 ‘순수한 옆집 동생’ 같았다. 조금이라도 치켜세우면 손사래부터 쳤다. 특히 ‘천재’라는 수식어엔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요. 다만 어머니께서 어느 날 그러시더라고요. 천재성이 있는 건 모르겠지만, 만약에 있다고 하면 연습해서 생긴 거라고요. 너처럼 연습을 많이 하는 애는 한 번도 못 봤다는 말씀을 하시면서요.”

박지혜는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이후 14살에 독일 마인츠 음대에 최연소로 합격했고, 독일 국비로 미국 인디애나주립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정부로부터 국보급 명기인 1735년산 ‘페투르스 과르네르’를 무상으로 대여받기도 했다. 40억원을 호가하는 바이올린인데, ‘계속 좋은 연주를 부탁한다’는 차원에서다. 2년 전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뉴욕 카네기홀 시즌 개막 연주를 맡기도 했다.

“학교 입학 전까진 엄마가 유일한 스승이었어요. 독일 유학 시절 저를 낳으셨는데, 바이올린을 하게 된 게 저한텐 가장 큰 유산이죠. 태교도 바이올린으로 하셨으니까요. 졸업 연주 리사이틀을 일부러 만삭일 때 하실 정도였어요.”

자연히 바이올린은 아주 어릴 때 잡았다. “엄마가 대학생들 레슨을 하고 있고, 저는 젖먹이일 때였는데, 그때 처음 바이올린을 만졌던 기억이 나요. 젖병을 물고요. 물론 켤 줄은 몰랐고, 그저 흉내를 냈던 거죠. 그러면서 엄마가 레슨을 마칠 때를 기다렸어요.”
배우게 된 ‘동기’랄 것도 따로 없었다. “엄마가 하는 거니까, 나도 해야 되겠다는 생각?(웃음) 무엇보다 엄마에게 칭찬받는 게 좋았어요. 엄마가 좋아하는 게 바이올린이니까, 내가 잘하면 좋아하시지 않을까….”

말을 하게 되면서부터는 입버릇처럼 바이올린을 배우겠다고 했다. 그런데 엄마 생각은 달랐다. “딸이 같은 길을 걷길 바라지 않으셨어요. 얼마나 외로운 싸움인지 아니까. 배우는 건 괜찮지만, 전공은 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취미로 배우다, 모녀가 바이올린에 좀 더 진지해진 계기는 박지혜가 4학년 되던 해. “한국에서 하우스콘서트를 열었는데, 그때 제 연주를 보시고 엄마 반응이 다르더라고요. 바이올린을 잘 켜는구나, 실력이 있구나, 이런 게 아니라 그저 ‘내 딸 자랑스럽다’라는 말을 연신 하셨어요. 처음으로 인정받은 순간이었죠.”


극심한 우울증, 죽음 직전까지 내몰다

배 속에서부터 바이올린 소리를 들었고, 더없는 스승이 돼준 엄마를 만났다. 일찍이 재능을 드러냈고, 독일의 국보급 바이올린까지 받았다. 그러나 늘 평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어느 날 극심한 우울증이 찾아왔다. “14살에 대학을 조기 입학하면서 중고등학교를 동시에 다녔어요. 그러면서 이도 저도 아니라는 느낌을 받게 됐습니다. 어느 사회에서도 적응을 못 하는 느낌. 그 후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대학 수업만 듣게 됐을 때, 비교적 자유시간이 많아지잖아요. 근데 그 자유시간에 할 게 없더라고요. 아, 뭐지. 나는 왜 친구가 없는 거지….”

대화를 해도 그 나이대 여느 학생들의 관심사에 따라갈 수가 없었다. 연습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많게는 하루에 16시간 동안 바이올린만 켰다. 엄마는 “귀에서 거품이 나올 것 같다”며 그만하라고 호통을 치기까지 했다.

“학교 연습실에서 하루 종일 연습을 하고 나왔는데 처음으로 대낮에 햇살을 본 거예요. 와. 봄날이라는 게 이렇게 아름다운 거구나. 화창한 봄날에 태양을 받은 꽃이 이렇게 아름답구나.” 대상 하나하나가 ‘느낌표(!)’를 달고 다가왔다. ‘놓치고 사는 게 이렇게 많구나’ 싶었다. 음악도 그중 하나였다. 정작 음악을 하는 자신이지만, 음악으로 치유될 수 있다는 걸 잘 몰랐다.

“병원에서도 (우울증이) 심각하다는 진단을 내렸어요. 이렇게 놔두면 안 된다고, 얼른 보호자 모시고 오라고 하더라고요. 어떤 약도 도움이 안 됐죠. 그렇게 한 5년을 앓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들려온 음악이 저한테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거예요. 그러면서 아주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했어요.” 이후 음악에 대한 의미가 달라졌다. “단순히 듣는 게 아니라요. ‘널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메시지를 줄 수도 있는 거더라고요.”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차츰 회복세를 띠던 어느 날, 한 공연에서 어느 여성이 다가와 한 말이 그 마음가짐을 더욱 단단하게 했다. “공연을 보러 오기 전에 마지막 결심을 했다는 거예요. 자살하기 전에 공연을 보러 온 거죠. 근데 연주를 듣고 나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대요. 그러면서 고맙다고 우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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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 봉사 통해 선한 영향력

그는 “바이올린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고 했다. 음악을 통해 거듭났고, 자신의 음악으로 치유를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생긴 일종의 의무감이다. 어린 시절엔 막연한 바람이었다면, 지금은 몸소 실천 중이다.

몇 해 전부터 유럽과 미국, 한국의 교도소와 교회, 병원 등을 찾아다니며 무료 연주회를 펼치는 것도 그래서다. “독일 정부에서 악기까지 받아서 쓰고 있는데 죽기 전에 의미 있는 일은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처음에는 교회에서 무료로 연주를 하는 걸로 시작했어요. 지금은 교도소, 군부대, 시장, 백령도 NLL, 독도…. 별의별 데를 다 갔어요. 위로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다요.” 해외 공연이 있을 때도, 해당 지역에서 꼭 봉사 연주를 하고 온다. 테드 강연차 미국에 갔을 때도 그랬다. “한 미국 아주머니가 그러시더라고요. 자신이 암에 걸려서 하루하루 고통스러운데, 연주 듣는 동안은 하나도 안 아팠다고요. 봉사 연주를 멈출 수 없는 이유죠.”

앞으로는 더 바쁠 것 같다.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국제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위촉이 됐고, 4월에는 미국 국회 공연도 앞두고 있다. 7~9월 중순에는 예술의전당 공연, 이듬해에는 6개 대도시에서 대규모 공연 또한 기획하고 있다.

최근엔 두 번째 앨범도 냈다. 앨범의 키워드는 ‘봄’이다. 그는 “영국의 시냇물이 흐르고 새소리가 들리는 아주 ‘물 좋은’ 곳에서 일주일 정도 머물면서 녹음했다”면서 “그런 풍경들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 한 녹음이 앨범에 그대로 담겼으리라 믿는다”고 했다.
“유럽의 봄은 한국의 봄과는 조금 달라요. 날씨가 하루에 몇 번씩 바뀌고, 사람을 가라앉게 만들었다가 가뿐하게 하기도 하죠. 이번 앨범 주제를 ‘봄’으로 삼은 건, 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게 따뜻한 봄만은 아니라서입니다. 오랜 시련을 지나고 나서, 그래도 봄이 돌아온다는 건 여전히 따뜻할 수 있기 때문이겠죠?”

사진 신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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